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낳는 건 엄마인데 아빠가 비명

2세, 낳는 건 엄마인데 아빠가 비명.

 

 

  해가 저물어가는 어느 가을의 오후.

 

  화산의 넓은 연무장을 지나 거주공간 가장 안쪽으로 들어가 보면 노후되었던 건물을 다시 지어서 쓰고 있는 한 부부가 있다. 정파 중에서 도인의 혼인을 규제하지 않는 탓인지, 혼인 당사자가 화산의 청명인 탓인지 그들 부부는 이곳에서 생활 중이다.

 

  혼인 후로 크게 달라진 것 없이 평범하고 왁자지껄한 나날을 보내던 중 슬슬 아이를 한 명쯤 가져도 좋을 것 같다는 소소의 말에 청명이 도저히 상상이 가지 않아 기겁하며 도망가던 게 며칠이었던가.

 

  결국 아내의 말과 행동력에 두 손 두 발을 들고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소소는 회임에 성공하였다. 청명이 그동안 기피하던 이유인즉 소소가 이렇게 작은데 어떻게 아이를 가져서 낳는다는 말인지 분명 매우 아프다고 알고 있어서 그러하였단 주장이나 실은 자신이 좋은 부모로서 자식에게 사랑을 줄 수 없는 점을 걱정한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연인이 되어서 결국 혼인까지 한 뒤 화산의 망나니의 목줄을 어느 정도 꽉 쥐어서 사람 꼴로는 만들어둔 소소였기에 남편을 열심히 설득하며 ‘우리 주변엔 좋은 사람들이 많다(반쯤 보모 노릇해줄 희생양들), 당신이 잘 모르겠는 만큼 내가 노력하고 많이 알려줄 테니 겁먹지 말고 함께 열심히 키워보자.’라는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 뒤로 시간은 쏜살같이 흘러 오늘날.

 

  신혼부부의 방에서 악을 쓰는 소리가 들린다.

 

  “아아악!”

 

  “아니, 왜 벌써! 예정일은 이틀 후였는데! 소소야! 심호흡하고..!”

 

  어느 날의 이른 새벽 양수가 터진 소소는 원래 계획대로라면 계산해둔 예정일 전에 본가로 떠나 출산을 마친 뒤 산후조리를 하다가 돌아올 것이 맞았으나 이 아득하게 높은 화산 위에서 분만을 하게 되었다.

 

  “악! **! *나 아파! 엉엉..”

 

  양수가 터진 직후 청명을 시켜 화음현에서 왕래 진찰을 봐주던 마을 의원을 데리고 오게 한 덕에 지금 곁엔 진땀 빼며 아기가 나올 수 있게 소소의 몸이 준비가 전부 끝마칠 때까지 남편을 짤짤 흔들며 고생하는 중이다. 진통이 시작된 후에도 길이 다 열리기 전엔 낳을 준비를 하기보단 산모가 조금이라도 움직이며 있는 편이 좋기 때문에 현재 소소는 방 안에서 한쪽 팔로 남편을 잡은 채 빙글빙글 돌아다니는 중이다.

 

  청명과 연애할 때만 해도 입이 거친 편이었던 당소소가 임신 후로 태교에 좋지 않은 영향을 줄 듯하여 덕분에 온 화산 식구들까지 비속어 금지당해 실세인 청명의 귀에 들릴 때마다 특별 일대일 훈련 일정을 두어 명 받은 후론 화산 내에서 험한 말이 나오지 않았었다.

 

  그러나 현재.

 

  “아아악! **! ***! 아오 **! 아아아아악!”

 

  “끙.. 소,소소야...”

 

  오래간만에 들어보는 소소의 살벌한 육두문자에 처소 밖에서 발을 동동 구르며 지켜보던 사람들은 물론이거니와 부축하는 중인 청명이까지 흔들리는 눈으로 어쩔 줄 모르고 있었다.

 

  진통이 이어진지 대략 반나절이 지나갈 즘 땀으로 온통 젖은 채 힘겨워하는 소소를 보던 청명이 의원을 재촉하였다. 그의 채근에 한 번 더 아이가 나올 수 있나 진료를 보던 의원이 말했다.

 

  “조금 더 길이 열려야 하지만.. 해 봐도 되겠습니다. 눕겠습니다. 이쪽으로.”

 

  의원의 말에 청명이 소소를 천천히 눕힌 뒤 한 손으론 아내의 손을 힘주어 잡아주고, 깨끗한 천으로 이마를 닦아주다가 이어진 말에 고개를 든다.

 

  “산모님께서 낳으시는 동안 곁에서 계속 호흡과 힘이 들어갈 수 있게 해주시면 됩니다. 첫째라 정신없으시겠지만 체온이 떨어질 수 있어서 낳는 동안 제가 신호하면 배 위에 손을 얹어 따뜻한 기운을 넣어주시면 좋습니다.”

 

  “그래.”

 

  비장하게 고개를 끄덕인 청명이 긴장하였는지 입술을 한 번 깨물더니 더 고생하는 소소의 얼굴을 쓰다듬다가 이마에 가볍게 입 맞춰준 후 큰 손으로 부른 배 위에 올려놓았다.

 

  같은 시각 신혼부부 처소의 바깥.

 

  비속어를 남발하며 진통으로 악을 쓰던 소소의 목소리에 떨던 화산의 제자들이 의원의 “더 힘을 주셔야 합니다! 더!”하는 소리에 분주해진다.

 

  처음 목소리 낸 것은 조걸이었다.

 

  “나,낳으려나 봅니다. 사형, 사고.”

 

  “소소가 아이를 낳다니, 청명이놈의 아이라니. 나는 도저히 상상이 안간다.”

 

  “소소. 고생 중. 해줄 수 있는 거 없어.”

 

  유이설의 말을 끝으로 잠시 침묵이 이어진다. 서로가 소소를 향해 걱정 어린 눈빛으로 발을 동동 구르고 있지만 신혼집에 온갖 귀한 선물들과 아이 용품을 잔뜩 사준 것도 그들이다.

 

  “잠깐. 안에서 청명이녀석 소리 들리는 것 같은데..?”

 

  백천의 말을 끝으로 저마다 상념에서 잠겨있다가 안쪽에서 들리는 소리에 집중한다.

 

  얼마 안 가.

 

  “끄아아아아악! 와악! 악!”

 

  움찔.

 

  “왜.. 청명이가 소리를 지르고 있지.”

 

  ***

 

  “아아아악!”

 

  “왁! 으아아아아아아악!”

 

  “머리가 좀 더 나와야 합니다! 힘주세요!”

 

  현재 소소는 고통에 눈을 제대로 뜨기도 힘들어서 귀라도 열고 의원 말대로 힘을 주려 노력하는 중이다.

 

  “끄아아악!”

 

  다만, 양손으로 청명이의 머리채를 잡은 상태로.

 

  “아아! 아파! 아파 소소야! 으악!”

 

  “아 **! 아아아악!”

 

  눈물 흘려가며 악쓰는 중인 아내의 팔을 차마 힘줘서 떼어내진 못 하겠는지 청명이는 그저 함께 소리 지르는 중이다. 머리카락이 이러다간 다 뜯겨서 소림에 들어가도 되겠다 싶어진 그가 내공을 슬쩍 올려 두피로 보낸다. 그런다고 자신이 직접 무공을 가르쳐 준 소소의 힘을 무시할 수 없었다.

 

  부부가 함께 사이좋게 소리 지르는 동안 의원이 “머리가 거의 다 나왔습니다! 아기 아버님! 이제 기운을 넣어주면 될 듯합니다!”라는 소리에 눈물이 핑 도는 와중 착실하게 손으로 내력을 돌려 아내의 몸에 찬기가 안 들어오게 해준다.

 

  곧이어 머리를 잡은 의원이 어깨만 나오면 정말 끝이라며 마지막으로 힘을 주라고 말했다.

 

  “흡끄아아아악!”

 

  “으아아아!”

 

  거의 동시에 소리가 터졌다.

 

  -우둑. 후두둑.

 

  “으아아아앙!”

 

  아기의 울음소리와 아기 아빠의 두피에서 결국 운명을 다한 머리카락이 안녕을 고하는 소리였다.

 

  “하아..”

 

  “아이는 건강합니다! 축하드립니다, 고생하셨어요.”

 

  방 안으로 아이가 우렁하게 우는 소리가 났다. 의원이 말하자 청명은 눈물이 핑 도는 상태로 소소에게 입 맞춰 말했다.

 

  “고생했어. 너무 고생했어 소소야.”

 

  “아오.. 힘들어. 하아.”

 

  미리 준비해둔 깨끗한 천과 물로 아이를 닦은 후 소소의 품에 안겨주었다. 부부의 방 안에서 의원은 조금 더 있다가 문을 열고 나갔다. 그러자 앞에 옹기종기 모여있던 문파의 사람들이 우르르 달려와 채근한다.

 

  “소소는 무사한가?”

 

  “아기 울음소리가 아주 크던데, 그래, 아들인가?”

 

  거의 동시다발적으로 질문해대는 통에 거대한 도사들에게 둘러싸인 의원이 잠시 당황하였다가 진정하며 말하였다.

 

  “산모와 아이 모두 무사하고 건강히 출산을 마치셨습니다. 진정이 되시거든 아버님이 직접 나오셔서 들라 하신답니다.”

 

  “후우. 그것참 다행인 일이야. 아이고.”

 

  모든 사형제와 장로들이 가슴을 쓸어넘기던 그때 한 명이 질문하였다.

 

  “그래서 아이는 남자아인가 여자아인가..?”

 

  꿀꺽.

 

  신혼부부의 집 앞이 일순 조용해진다.

 

  “그것이.”

 

  -그것이...?

 

  -덜컥.

 

  “뭐야. 다들 왜 이렇게 모여있어?”

 

  “청,청명아.”

 

  때마침 안쪽에서 문을 열고 청명이 걸어나온다. 어쩐지 유독 핼쑥해 보이는 몰골로 주변을 휙휙 둘러보던 그가 눈에 보이는 사형제 중 한 명에게 말을 한다.

 

  “소소가 먹기 좋은 밥상 좀 가져와 줘.”

 

  그 말에 고개를 여러 번 주억거리더니 한 명이 주방 쪽으로 부리나케 달려 나갔다.

 

  “저기. 청명아.”

 

  “엉?”

 

  “아기는 사내냐?”

 

  피식.

 

  “딸인데? 아 참. 오늘은 소소 피곤하니까 자고, 내일부터 와. 손 씻고 청결하게 안 들어오면 다 내쫓을거야.”

 

  ‘헉’하는 단말마와 함께 순식간에 여기저기서 속닥거리기 시작한다. 탄식을 하며 안도의 숨소리와 같이 ‘원시천존이시어 감사합니다’하며 누군가 말하자 모두 고개를 끄덕인다.

 

  당연한 일이다.

 

  모두가 성별을 떠나 함께 예뻐해 주리라 마음먹었지만 내심 속으론 청명이 같은 사내가 또 태어나는 짓은 아무래도, 아무리 그들이라도 힘들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빠르게 자란다. 허나 아무리 요즘 애들이 빨리 자란다고 하더라도 정도는 있는 법.

 

  청명과 소소의 딸은 그 정도를 벗어난 아이였다.

 

  화산의 경사가 났으니 당연히 객을 맞이하고 문을 여는 것이라, 친히 장로들의 손으로 아이의 탄생을 축하하기 위한 연회가 열흘간 열리었다. 그리고 조금 더 지나 화산의 제자들 모두가 아이를 한 번씩 안아보는 것이 끝났을 즘까지 겨우 50일이나 되었나 싶은 그 기간이었다.

 

  “훈련 안 해? 다들 내가 요즘 좀 아기 보느라 바쁘다고 아주 빠졌지?”

 

  출산 후 회복을 위해 잠깐 친가에 다녀오겠다며 내려간 소소가 청명에게 아이를 돌봐달라 하였다. 아내의 임신 이후로 서적과 거리가 오십 리는 떨어져 있는 그도 머리를 긁어가며 이론을 달달 외우고 아이 안는 법을 연마한 덕에 비록 실전은 처음이지만 한 아이의 아비로써 맘 편히 다녀오라며 소소를 배웅해 주었다.

 

  그것이 바로 지난주의 일.

 

  연무장에 선 청명이 하얀색의 작은 것을 품에 안은 채로 나와 있다.

 

  “너 품에 그건 무었이냐? 화음현에서 당고라도 한 뭉치 사온것이냐?”

  “엥?”

 

  -꼼지락.

 

  “어어...?”

 

  사형제들이 오해한 그 작은 당고 주머니의 정체는 화산의 경사. 소소의 딸아이이자 저 눈앞의 평생 철은 안 들 것 같던 청명이의 자식이자 화산의 사랑을 온갖 차지하고 있는 공주님이었다.

 

  “내 딸인데. 오구. 기분좋아~ 아빠가 매화 보여줄까?”

 

  “허..”

 

  모를 일이다.

 

  그 화산의 청명이 조그만 딸아이에게 웃으며 높은 목소리를 내리라곤 상상이나 해 봤을까.

 

  “근데 아이가 금방 컸네요. 보통 목도 못 가누고 아직 옹알이도 못 하는데. 벌써 아빠를 알아보고 목도 잘 가누네요.”

 

  보통의 생후 50일 아이는 이제 겨우 슬슬 목을 가누어야 하는데, 부모가 그 둘이라 남다른 유전자를 벌써부터 뽐내었다.

 

  “우앙. 우.”

 

  “그래 그래. 기분이 좋아요~ 우리 딸~”

 

  -웅성웅성.

 

  “옹알이도 잘 하는데요?”

 

  “..설마.”

 

  “헉.”

 

  -천재다...!

 

  ‘기필코 저 둘이 천재를 낳았구나.’

 

  “청명아. 아무래도..”

 

  “어? 뭐가?”

 

  청명에게 손바닥만한 딸을 살랑살랑 흔들어주며 함께 꺄르륵대던 그가 사형이 어깨를 잡으며 퍽 진중하게 말 거는 소리에 대답했다.

 

  “아무래도 소소가 천재를 낳은 것 같아. 이 아이는 천재다..!”

 

  “천재-..”

 

  휙.

 

  딸을 내려다보자 청명을 닮은 맑은 눈으로 똘망똘망 고개를 든 채 웃는 아이가 보였다.

 

  헙!

 

  “우리딸. 천재야.”

 

  -끄덕.

 

  -끄덕.

 

  퍽 진중하게 무언가를 결의하던 그들이었다.

 

  ***

 

  시간이 그만큼 아주 조금 더 흘렀다.

 

  이곳은 섬서와 조금 떨어진 사천. 늘 인구가 많은 이곳이 평소보다 곱절은 인산인해가 되었다.

 

  “아이고! 길 좀 갑시다!”

 

  누군가 크게 소리쳤다. 크게 장터가 열리고 온통 축제 분위기이다. 그만큼 당가의 무인들이 거리 곳곳에서 객들을 통제하고 원활하게 움직일 수 있도록 손을 보태었다.

 

  당가에서 직접 경사를 축하하기 위해서 최대한 화려하고 예쁘게 준비한 축제이니만큼 같은 시각 그 주인공들은 눈코 뜰 새 없었다.

 

  “우웅.. 아브아.”

 

  “딸램. 요고 모자만 쓰자. 응?”

 

  “히로.”

 

  야무지게 머리에 올라간 모자를 고사리 손으로 잡더니 휙 잡아 던진다.

 

  “하하. 누구 닮아서 이렇게 힘도 잘 쓰고, 말도 잘해. 진짜 천재 아니랄까 봐. 하하하.”

 

  “아오! 당신은 얼른 다 입히라니까 이것도 못해요? 지금 좋다고 웃을 때가 아니라니깐요.”

 

  청명이 아이에게 모자를 씌우다가 거절당하기를 몇 번째 자신의 치장을 서둘러 끝낸 소소가 다가오더니 남편을 채근한다.

 

  “그리고 아버님! 내가 그냥 화산에서 작게 하고 싶다 했잖아요. 백일잔치를 이렇게 크게 하는 게 어딨어요. 주책이야.”

 

  “아니, 소소야. 그래도 우리 손녀딸 경사인데 이 정도는 해야..”

 

  “맞아.”

 

  엄마의 야무진 손길로 딸은 입술이 한껏 나온 채 모자 끈에 꼼꼼하게 턱 밑으로 매듭까지 묶여 고정되었다.

 

  “아휴. 몰라 진짜. 장문인께 말씀도 해봤는데 다들 생각하는 건 다 똑같고.”

 

  “웅마.”

 

  딸의 부름에 소소가 바로 눈높이에 맞게 자세를 내려 대꾸한다.

 

  “응. 우리 딸. 이제 나가서 딸 돌잡이하고 밥만 먹으면 코 자자. 잘 할 수 있지?”

 

  “웅.”

 

  전체적으로 눈 코 입은 청명을 닮았으나 사랑스럽기 짝이 없는 분위기와 애교 있는 성격이 소소의 어릴 적을 쏙 빼닮았다. 곧잘 말을 하면 알아듣는 건지, 뭐든 고개를 씩씩하게 끄덕이는 아이다.

 

  “읏쌰. 나가자. 여보.”

 

  “그래요.”

 

  자연스럽게 딸을 안아든 청명이 한 손으론 소소의 손을 깍지 껴잡으며 밖으로 연회장으로 이끈다.

 

  중원 곳곳에서 한가락 하는 인물들이 모두 모인 곳.

 

  아이가 놀랄 수 있으니 와서 기운 펼치는 놈 있으면 친히 직접 담가버리겠단 백일잔치 초대장 아래 적힌 말에 그곳에 자리한 모든 고수들이 쩔쩔매며 담소를 나누다가 문이 열리자 시선을 집중한다.

 

  “참. 어쩜 아이가 저리도 사랑스러울까.”

 

  그렇게 비무를 하고 박 터져라 맞은 적이 있던 몇몇까지도 모두 그 말에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아이 아빠의 얼굴은 늘 무섭기 짝이 없어서 그동안 그가 인물이 훤한지 모르던 그들이었기에 어쩔 수 없는 것이다.

 

  그 온갖 무인들, 한 가락 하는 사람들을 똘망똘망하게 지켜보던 작은 아이가 돌연 배시시 웃는다.

 

  “크흡.”

 

  “허억.”

 

  청명이가 돌잡이를 위해 마련된 탁자 위 포근한 의자에 아이를 앉히자 준비된 듯 애교를 부리기 시작했다.

 

  “헤헤-”

 

  짧고 통통한 팔을 앞으로 뻗어 흔드는가 하며 다른 아이들보다 성장이 빠른 덕에 난 작은 앞니가 보이게 활짝 웃어 보이기까지 한다. 이 자리에 오기 위해서 그들이 초대장을 받고자 들인 돈이 얼마였나. 심지어 이 앞에서 입장전 축하를 위해 마련된 것이라는 명목으로 혼인날 곳간을 다 털었던 주제에 또 눈물을 머금고 가져온 주머니를 반납해야 했다.

 

  심쿵사로 무인 몇몇이 수하의 손에 이끌려 나가는 것까지 흡족하게 보던 청명이 슬슬 모두가 가장 궁금해하던 행사를 진행한다.

 

  “큼. 그럼 지금부터 돌잡이를 시작하겠습니다. 딸아이가 원하는 걸 집을건데, 보통 여기서 집은 것이 미래의 가지게 될 직업이라고 합니다. 응원하는 마음으로 봐주시길 바랍니다.”

 

  -꿀걱.

 

  도사들이 모인 곳 아니랄까 봐 온갖 물건이 탁자 위에 올려져 있다. 작은 손으로 모인 사람들을 향해 손을 흔들며 어른들의 재롱잔치에 꺄르륵대는 아기를 보던 조걸이 말했다.

 

  “사형. 어떤 거 집을 거 같으세요?”

 

  조걸의 물음에 윤종이 이런저런 작은 물건들을 보다가 대답했다.

 

  “음. 글쎄. 워낙 힘이 좋고 부모가 저 둘이니까.. 어디 보자. 모형검 아니겠어?”

 

  곁에서 그들의 대화를 함께 듣던 백천도 입을 열었다.

 

  “나는 반대다. 저렇게 귀엽고 사랑스러운 아이가 청명이를 닮은 검수가 된다니. 붓을 잡아서 관직에 가는 게 좋지. 검수가 되면 너무 다친다.”

 

  백천의 말에 둘이 고개를 끄덕거린다. 그때 곁에선 유이설이 말했다.

 

  “검. 분명 훌륭한 매화를 피우는 검수가 될 거야.”

 

  “다른 문파로 갈 바엔 확실히 차라리 저 매화문양을 넣은 모형 검을 잡는 게 우리에겐 무엇보다 좋지.”

 

  끄덕.

 

  곁에서 부채로 입을 가린 채 다른 사람들에게 숨겨져 지켜보던 임소병이 탁자 위에 자신이 쓰던 다른 부채 한 개를 스윽 내려놓는다.

 

  ‘아가. 녹림으로 오거라. 그땐 내 세상이다.’

 

  “거기. 동작 그만.”

 

  ‘눈치 빠른 말코도사.’

 

  “아니-”

 

  변명을 하려던 임소병 앞으로 누군가 모습을 보였다.

 

  “시주. 혹시 모르는 것 아닙니까.. 소림으로 올지도-..”

 

  혜연이었다. 묵주팔찌 하나를 탁자 중안부쯤으로 소란을 틈 타 끼워 넣었다가 청명에게 딱 걸린 것이다.

 

  ‘어휴. 십년감수했다.’

 

  고비를 넘긴 임소병이 탁자 위 다른 물건들을 훑어보았다.

 

  ‘온갖 게 다 있네. 이게 돌잡이야, 문파 정하기 잡이야.’

 

  초대된 문파의 수장들이 옥신각신 자신들의 가문이 찍힌 검이며, 부채, 당가 아니랄까 봐 비도부터 독, 침 등 아주 다양한 것들이 잔뜩 올려져 있었다.

 

  “소소야. 손녀가 무얼 잡았으면 좋겠느냐.”

 

  “아버님. 저는 그냥 실이나 잡으면 좋겠어요.”

 

  “에헤이! 안돼. 우리 딸은 역시 돈이지!”

 

  딸의 한쪽 손을 잡고 같이 놀아주던 청명이 아내 소소의 말에 아주 식탁 바닥도 안 보이게 깔아둔 온갖 금이며 보석, 돈다발을 멀지 않은 곳에 쌓으며 말했다.

 

  “당신.. 역시 당신다워.”

 

  소소가 늘 있던 일인 양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반응한다.

 

  “슬슬 시간이에요. 여보.”

 

  청명이 그 말을 듣고 딸을 다시 들어서 의자 위에 똑바로 앉힌 뒤 이곳까지 온 손님들을 향해 목소리에 살짝 내력을 넣어 말한다.

 

  “자! 돌잡이 시작하겠습니다. 아이가 고르면 금방 끝나니까 눈에 힘 넣고 잘 보시기 바랍니다.”

 

  곁에 선 소소가 아이의 작은 어깨를 잡으며 톡톡 두드린다.

 

  “우리 딸. 가서 잡고 싶은 거 집어.”

 

  “웅?”

 

  엄마의 목소리에 좌우로 부모님을 휙휙 돌려 쳐다보던 아이가 앞에 선 사람들도 일제히 소리 죽여 자신을 보자 손가락을 꼼지락거렸다. 도통 엉덩이가 움직일 생각을 안 하자 청명이 돕는다.

 

  “가서 갖고 싶은 거 다 집어와 딸램. 아니면 아빠 쓰는 검 모양 집어와도 괜찮고.”

 

  “우.”

 

  아빠의 말에 탁자 위 빼곡하게 자리한 온갖 장난감들을 보다가 팔을 뻗었다.

 

  “오오! 잡으려나 봅니다!”

 

  오동통하고 짧은 팔이 눈앞의 보석을 집으려다가 어른들의 소리에 주변을 슥 둘러보곤 다시 팔을 뺀다. 반복하며 좌우로 손을 뻗어대던 중 사람들의 목소리가 재밌는지 연신 꺄르륵 거리며 집으려다가 놓기를 계속하다가 어느 순간 큰 탁자 위로 올라가 뽈뽈 기어다녔다.

 

  백천과 화산의 제자들 쪽으로 간 아이가 그 앞에 있던 매화검에 손을 갖다 대자 연신 조용하던 유이설이 눈을 반짝이고, 흥분한 조걸이 “옳지옳지! 아가! 화산이다!” 하며 외치는 말에 집어들진 않고 그 손을 뗐다.

 

  “헤헤.”

 

  아이의 어른들 마음을 들었다 놓는 수법이 예사롭지 않아 온갖 날고 기는 수장들을 농락하며 꺄르륵대던 중 가까이에 선 할아버지가 말했다.

 

  “우리 손녀. 비도는 어떠냐. 이 할애비가 직접 알려주마.”

 

  “우우?”

 

  할아버지 쪽으로 돌아앉은 아기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동그란 눈을 반짝이자 당군악 반경 세 자 안에 들었던 모두가 심장을 부여잡았다.

 

  “허윽. 너무 사랑스럽군요.”

 

  “어찌, 어찌 저런 이쁜 아이가..”

 

  그리고 그때 아이는 지금까지와 다른 기세로 우다다 한 곳을 향해 기어가기 시작했다.

 

  “어엇! 설마 제갈가의 부채를?”

 

  “지나친다..! 그럼 그 앞에 책인가!”

 

  용맹하게 물건들 사이로 조그만 아이가 돌진하듯 기어간다.

 

  “그것도 아닌듯하오! 앗! 잡으려나 봅니다!”

 

  딸아이의 행진에 눈을 부릅뜨고 지켜보던 청명의 입이 점점 크게 벌어진다.

 

  ‘아니 잠깐! 저거.. 저건 안되는데!!’

 

  덥석.

 

  “헙.”

 

  일제히 회장이 고요해진다.

 

  그때 누군가 정적을 깨고 입을 열었다.

 

  “이건 아비의 잘못이지요. 허허.”

 

  꼴좋다는 듯 인파 사이에 숨어 은근하게 돌려까자 화산파의 사람들과 아이의 가족들을 제외한 모두가 대폭소하기 시작한다.

 

  “큿, 와하하!”

 

  “아니, 크크큭.”

 

  “아하하하! 하필 집어도.. 끄읍.”

 

  벙진 소소와 청명의 얼굴이 삐거덕 거리다가 폭소하는 사람들을 향해 환하게 웃는 아이의 얼굴을 보고 서로 고개를 돌려 마주 보았다. 그리고 정확히 삼 초 후. 아이를 낳은 뒤 한층 강해진 당소소의 손이 청명의 어깨에 꽂힌다.

 

  찰싹찰싹.

 

  “어휴! 내가! 못살아! 당신 때문이잖아요!”

 

  “아야. 아야야! 아니, 나는 저걸 잡을 줄 몰랐지.”

 

  “애초에 저걸 왜 애기 돌잡이 상에 올린 거야! 이 썩을 상공!”

 

  “아야! 미안해! 아 저게 왜 저기 있지. 하하...”

 

  아직도 아이가 두 손으로 꼭 쥐어 잡고 해맑게 웃고 있는 그것.

 

  ‘주병’이다.

 

  초토화된 회장 안에서 모든 어른들이 아이를 향해 웃어주자, 아이도 마냥 좋다고 함께 작은 앞니를 드러내며 “히히” 웃는다.

 

  “겨우 백일 된 애가 술병을 잡았다는 건. 무조건 청명이 때문이지.”

 

  “청명. 금주 필요.”

 

  “하아아...”

 

  어찌되려고. 원시천존이시어.

 

  아직도 아내에게 짤짤 털리고 있는 청명이 열어둔 창밖을 향해 맥없게 웃었다. 그렇게 한참을 소란스러웠다가 정신을 차린 소소가 남편의 구겨진 멱살 옷깃을 털어주며 ‘당신 조금 이따 봐요.’ 작은 소리로 속삭이자 오싹해진 청명이 고개를 여러 번 끄덕인다.

 

  슬슬 회장 내부로 음식이 차례차례 들어오자 꼴도 보기 싫은 탁자 위 물건들을 전부 정리한 당군악이 술잔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여기까지 걸음 해주신 귀빈들께 감사를 전합니다. 취지공비집지공함(吹之恐飛執之恐陷)이라. 불면 날아갈까 두렵고,잡으면 꺼질까 두렵기도 합니다. 허나 소소와 사위 녀석이 손녀를 잘 키워내고 있어 저는 그로 족합니다.”

 

  누군가 작게 속닥거렸다.

 

  “그렇다기엔 아까 술병..”

 

  “큼!”

 

  무인으로써 흘려듣고 싶지만 귀에 들어와서 살짝 머쓱해진 그가 헛기침을 한 번 하더니 말을 이었다.

 

  “자리해 주신 귀빈께 마지막으로 청해봅니다. 앞으로도 아이의 앞날을 함께 지켜보며 많은 축하와 애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봐 주시기 바랍니다. 상화하목(上和下睦)으로 마무리하겠습니다. 건강하게 백일을 맞이해 주어 고맙다 아가.”

 

  “축하합니다!”

 

  “축하해 아가~”

 

  “귀염둥이 백일 축하한다!”

 

  당군악의 축하 연설을 끝으로 모두가 잔을 올려 아이의 백일을 축하해 주었다. 청명은 오늘 하루 금주 명령을 받아 술잔은 입에도 못 댄 채로 딸아이를 품에 안은 채 소소와 함께 귀빈들에게 인사를 하러 돌아다녔다.

 

  자신들이 앉아있는 자리로 아이가 오자 화색을 띄우며 반겼다. 누군가는 아이에게 절대 아비를 닮아선 아니 된다는 말을 하거나, 정말 두 사람의 판박이라거나, 발달이 빠른 게 커서 큰 사람이 될 듯하다는 둥 모두가 웃으며 말을 주고받았다.

 

  날이 맑고 구름이 높게 뜬 어느 화창한 경삿날의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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